2012년도_입선_[글쓰기]_최고원교수
미디어학과_이명호
3년 만에 복학하여, 또래보다 늦은 대학 1학년을 다니게 되었다. 늦은 만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은 가슴을 넘어 목까지 차올랐고, 습관처럼 열심히 하겠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학기가 시작하니, 내가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너무도 막연하여 마치 안개 낀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듯 했다. 교양필수 과목이라 별 생각 없이 신청한 글쓰기 과목이, 그 안개를 해쳐 나갈 등불이 되어 줄지는 생각도 못했다.
사실 글쓰기는 그저 맞춤법 연습과 논설문을 쓰기 위한 작문 기술을 배우는 수업일 줄 알았다. 교재를 보아도 이 수업의 목적은 그것에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다른 글쓰기 수업에서는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기본목적에 충실한 수업을 하신다고 들었다. 하지만 최고원 교수님의 수업은 특별 했다. 우선 글쓰기 내용에 대한 것은 학생들의 발표를 통해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재미있게 전달되도록 진행하셨다. 물론 부족한 부분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해주셨다. 내용에 대한 지도 뿐 아니라 발표하는 태도와, 좋았던 점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셔서 발표하는 데 있어 자신의 장점과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교수께서 대학생활 중 청중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소중한 기회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학기 내내 학생들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 걱정해 주시던 모습의 일부인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특별 했던 점은, 학생들에게 그런 글쓰기의 ‘기술’ 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인 올바르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아무리 효과적으로 글을 쓰는 방법과 국어 표기법을 숙지하고 있어도 스스로 바르게 사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학생의 신분으로, 더 나아가 사회인이 되어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문제를 바라볼 때 어떠한 비판적인 관점과 논리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 신문은, 그저 사건사고나 연예계의 소식을 접하는 매체였다. 정치, 경제에 대한 내용은 어렵기도하고 관심도 가지 않았다. 교수님께서도 대부분의 대학생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신 듯 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이 쉽게 받아 들일만한 보도자료, 통계, 다큐멘터리 등을 수업시간에 이용하여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선 어떠한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인터뷰 장면 하나를 보아도 평소엔 아무 생각 없이 놓치고, 지나가곤 하였는데 영상에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전체 맥락에서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대사인지 짚어주셨다. 개중엔 나도 예전에 보았던 영상들이 있는데,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도대체 난 그때 저 영상을 보며 대체 생각이란 걸 했는가 싶어 반성하였다.
교수님께서도 수업을 많은 준비를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 많은 준비가 매 수업 느껴질 만큼 주제들은 한쪽에 편중 되지 않고 다양하였으며 또 한쪽의 입장에 치우쳐져 있지도 않았다. 모든 대학생이 고민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록금 문제,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에 대한 문제 등. 대학생이면 누구나,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문제에 대해 다루어주셨다. 평소 우리가 얼마나 근거도, 대책도 없는 껍데기뿐인 주장을 하고 있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 문제가 어떻게 발생되었고 왜 문제가 되는지 근본적인 이유부터 알고, 전체적인 맥락을 숙지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궁리도 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령, 일제강점기가 잘못 되었다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안다. 하지만 그 뼈아픈 역사가 어떤 식으로 보상되었는지, 아직 남겨진 문제는 없는지, 그렇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앎도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와 경제적 상황, 교육과 복지 환경 등이 왜 일본을 따라가는지,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이 현 상황만 보고 논하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끈끈이에 붙은 파리가 떨어져 보려 발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자세만 바뀔 뿐 끈끈이를 탈출하지는 못한다.
이렇듯 거의 신문의 모든 면에 해당하는 모든 분야의 문제에 대해 다루다, 어느새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어 가는 수업은 마치 옴니버스 영화 같았다.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문제들이 사실은 어떠한 끈으로 이어져 있는지 더듬더듬 찾아가는 수업이 너무도 흥미로웠다. 왜곡되지 않은 튼튼한 역사관과 문제들을 바라보는 통합적인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학문만 융합을 추구 할 것이 아니라, 교양과 상식에 있어서도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여 내 안에 튼튼한 주춧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 즈음, 다시 신문을 펴 보았다. 외계어로 쓰인 것처럼 느껴지던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기사들이 너무도 눈에 잘 들어왔다. 그뿐 아니라 기사 내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때로는 편파적인 입장을 보이는 기사에 대해 비난하고 있는 나를 자각하고는, 자연스레 변화된 나의 모습에 굉장히 놀랐다. 이제 나도 올바른 사고의 길 초입에는 들어섰다는 생각에 굉장히 뿌듯했다.
수업내용에 있어서도 얻은 것이 많아 최고원 교수님께 감사드리지만, 교수님의 인간적인 면모에 교수님들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계기가 되었고, 교수님들께 큰 존경을 품게 되었다. 주장하는 글쓰기 과제에 대해 교수님과 면담하던 중, 비문점검에 대한 부탁을 드렸다. 난 그 자리에서 훑어봐주시겠냐는 의도였지만 교수님께서는 채점 시 꼼꼼히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나중에 돌려받은 A4용지 3장 가득한 글들은 나의 글이 아니었다. 처음엔 무척 당황했지만 읽어보니 내 글 위에 첨삭 한 것이 아니라, 교수님께서 내 글에 대한 첨삭과 수정 대안을 빼곡히 직접 적어 주신 것이었다.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내며 30여명을 책임지는 담임선생님도 이렇게 신경 써 주는 것을 못 보았다. 하물며 바쁘신 교수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이렇게 신경을 써주셨다니 뭔가 가슴속에서 뭉클하였다. 첨삭 내용은 냉철하고 비판적이셨지만 혹시라도 상처받을까 격려해주시는 말씀하나에도 세심한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윗사람에게도 이 정도의 성의를 보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의무도 아님에도 이렇게 학생 한명 한명에게 정성을 다해 가르침을 주시려는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이전 까지만 해도 교수님들은 굉장히 학문적인 성취가 높으신 분들이며 그 학문적 성취가 학생이 배울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교수님들은 교수이기 이전에 우리 보다 먼저 산 인생 선배이며, 얼마든지 그 분들의 삶과 생각에서 인간적인 배움을 얻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꼭 학문적 내용이 아니라도 학생이 상담을 요청할 때 반기지 않는 교수님은 없으며, 교수님의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데 큰 부담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나는 대학 졸업 때까지, 대학 내에 가득한 최고의 멘토들은 생각도 못한 채 엉뚱한 곳에서 멘토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학기가 끝난 후, 나는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그곳에서 나를 제자라 칭했다. 학교에서 학생이란 말보다는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지만, 학생보다 훨씬 정감이 가는 말 같다. 왜냐면 스승이라는 말이 쌍으로 어울리기 때문이다. 혹시 너무 격의가 없는 것처럼 보일까봐 메일에서 교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르진 못했지만, 나를 제자로 칭함으로써 마찬가지로 존경의 의미를 전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은 학생의 스승이 되어 주실 최고원 교수님의 등댓불 같은 명강의를 들은 것은 정말 2012년 최고의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