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에게 들려주는 교육봉사 후기/김은진/영문학과
★ 후배에게 들려주는 교육봉사 후기★ 영문학과 김은진 나는 어릴 때부터 교사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의 칭찬에 크게 우쭐하지도 않았고, 꾸중에도 크게 속상해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좋은 교사’가 된다는 것은, 한 걸음 떨어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배워가고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공해주는 것을 의미했다. 학생들을 통제하고 학생들에게 지시하는 것은 권위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교육이었다. 이번 학기에 나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고등학교 2학년 즉 예비 고3학생들의 방과후 수업을 맡았다. 공교육의 대상 중 가장 어린 학생들과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들을 동시에 가르친 것이다. 지금까지 학원 아르바이트에서, 과외를 통해서, 교회봉사를 통해서 중고등학생들만 대하고 가르치던 나에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궁금하고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 평소 나의 교육관대로, 통제보다는 자율성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나의 첫 수업은 좌절과 절망, 그리고 쉬어버린 목 만을 남기고 끝났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5명이었는데, 경도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 두 명, 한 부모 가정 아이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섯 명 다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수준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 에 초점을 맞추었던 나의 고민은 수업 시작 십분 만에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자리에 앉게 할 수 있을까” 로 바뀌었다. 아이들이 상처 입을까 봐 큰 소리로 말하지도 못하고, 수업시간에 종이를 박박 찢으며 나의 관심을 끌려는 아이에게는 “하지 마” 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보려고 아동교육, ADHD아동 교육, 통합교육 과 관련된 책도 찾아보았다. 그렇게 두 달여를 고민하며 내린 결론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통제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 대일 교육이라면 몰라도, 일 대 다수로 이루어지는 수업에서는, 몇 가지 규칙과, 일관적인 교사의 반응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현장에서 ‘통제’는 백해무익한 것이라는 나의 신념을 흔들어 놓았다. 고등학교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방과후 수업에 모인 네 명의 인문계 고2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무언가 배우려는 열의도 강했고,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내가 ‘통제’ 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 한 곳에 있었다. 아이들이 ‘통제’를 원하고 있었다. “자, 이 부분에서 figure가 어떤 뜻으로 쓰였을 것 같아?” 라는 질문에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대신, 파란색 펜을 들고 입은 꼭 다문 채 칠판 앞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았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적으려 했다. 이번 교육봉사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는가” 혹은 “어디까지 아이들에게 맡겨야 하는가” 라는 질문 하나뿐이다. 이 짧은 질문은, 지금까지의 내 교육관을 뿌리 채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나에게는 질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어디까지 통제하고 제시하고 ‘가르칠’ 것인가. 교육은 무엇인가.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교육봉사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작은 질문 하나가 아니라, 더 성숙한 교사가 될 수 있는 기회다.